
대한민국 전통공예협회 초대작가이자 사무국장, 대한민국 전통공예대전 심사위원과 국제종합예술대전 운영위원·심사위원으로 활동 중인 화이 이화진 선생. 경주시청과 골굴사, 유럽 7개국 선무도 회외 지원 현판, 포항중앙여고 등 다수의 작품 소장처를 보유한 그는 현재 경주 골굴사 상설 전시장과 ‘화이각자회’ 공방을 운영하며 전업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최근 그는 또 하나의 길에 들어섰다. 개인 예술의 영역으로 여겨지던 서각을 넘어, ‘함께 완성하는 예술’인 판각의 세계다.
Q. 먼저, 선생님의 예술 여정을 소개해 주십시오.
저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삶의 지표로 삼아 살아온 지 어느덧 45년이 되었습니다. 글자를 새긴다는 것은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마음을 닦는 과정이라고 늘 생각해 왔습니다. 그 과정 속에서 서각이라는 예술을 통해 제 안의 세계를 표현해 왔고, 지금은 경주에서 공방과 상설 전시장을 운영하며 작품 활동과 후학 양성에 힘쓰고 있습니다.
Q. 판각이라는 새로운 세계에 입문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해인사 판각학교에 참여중인 송암 선생님의 권유가 결정적이었습니다. 개인 작업에 충실하던 제게 “함께 완성하는 예술을 경험해 보라”는 말이 큰 울림으로 다가왔습니다. 그 이후 매주 월요일, 경주에서 해인사까지 한 번도 빠짐없이 수업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그 길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제 마음을 다잡는 수행의 시간이기도 합니다.
Q. 서각과 판각의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서각은 말 그대로 개인의 예술입니다. 칼질 하나, 바닥 처리 하나까지 모두 작가의 개성과 감정이 드러납니다. 저 역시 제만의 기법과 표현으로 중견 작가로서 활동해 왔습니다. 하지만 판각은 다릅니다. 판각의 목적은 ‘나무 작품’으로써 완성이 아니라 ‘책’, 즉 서책으로 완성되는 데 있습니다. 한 사람이 아무리 뛰어나도 팔만대장경을 혼자 완성할 수는 없습니다. 여러 사람이 팀을 이루어 작업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모든 글씨체와 작업 방식이 표준화되어야 합니다. 서각이 개인 작품 활동이라면, 판각은 철저한 단체 활동입니다. 개인의 개성은 사라지고, 오직 하나의 기준과 전체의 방향이 합의 되어 나아가야 비로소 완성이 가능합니다.
Q. 판각학교에서 인상 깊었던 점이 있다면요?
지도해 주시는 안준영 각자장님과 안정주 부강사, 보조강사들께서 직접 칼을 들고 작업하며 지도하신다는 점이 가장 인상 깊었습니다. 말로만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보여주시는 모습에서 큰 울림을 받았습니다. 스승이 저토록 치열하게 임하는데, 제자들이 느슨해질 수는 없겠지요. 자연스럽게 수업의 완성도도 높아지고, 작업에 임하는 마음가짐도 달라집니다.
Q. 판각을 통해 선생님이 얻고 싶은 것은 무엇입니까?
불자로서, 단 한 줄이라도 경을 새길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것만으로도 제 삶은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름을 남기기 위한 작업이 아니라, 마음을 남기는 작업. 개인의 예술을 넘어, 함께 만드는 수행의 길 위에서 제 역할을 다하고 싶습니다.
Q. 앞으로의 다짐을 들려주신다면요?
오늘도 새로이 칼을 잡습니다. 표준 작업 속에서 제 자신을 내려놓고, 경을 새기는 한 사람의 일원으로 남고 싶습니다. 그 과정 자체가 제게는 예술이고, 수행이며, 삶의 길입니다.
전통과 현대, 개인과 공동체의 경계에서 예술을 수행으로 풀어내는 화이 이화진 선생.
그는 나무 위에 글자를 새기는 일이 곧, 사람의 마음 위에 가르침을 새기는 일이라고 말한다. “부처님의 말씀은 경전 속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삶 속에서 살아 움직여야 합니다.” 오늘도 그는 칼을 들며 스스로에게 묻는다. 이 한 줄의 판각이 누군가의 마음에 작은 등불이 될 수 있다. 그에게 판각은 작품을 만드는 기술이 아니라, 마음을 새기고 삶을 닦는 수행 그 자체다.
정안뉴스 안정주 기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