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제 의류부터 김밥집까지… 고정된 일자리 대신 ‘직접 설계한 생계’ 택한 30대 N잡러의 현실
청년들이 일자리를 잃거나, 처음부터 원하는 직장을 찾지 못한 채 '쉬고 있는' 숫자가 빠르게 늘고 있다.
통계청이 발표한 4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청년층 고용률은 45.3%로 2021년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고, 실업률은 7.3%, ‘쉬는 청년’은 1년 전보다 1만5000명 늘어난 41만5000명에 달했다.
통계청 관계자는 “원하는 일자리를 찾기 어려워서 쉬고 있다든지, 다음 일을 준비하기 위해 쉬고 있다고 답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냥 기다릴 순 없었다”… 청년, 스스로 직업을 만든다
경기도 고양시의 한 상가 4층, 좁은 복도 끝에 자리한 작은 점포.
여기선 오전엔 김밥이 만들어지고, 오후엔 중고 의류가 팔린다.
그리고 그 중심에 선 사람은 30대 청년 희희 씨다.
“사실 저도 전에는 회사에 다녔어요. 그런데 언제 잘릴지 모르는 불안이 컸고, 좋은 일자리는 줄어드는데 도전할 자원은 부족하더라고요. 그래서 아예 제 일을 직접 만들기로 했죠.”
그녀는 어머니와 공간을 나눠 쓰며, 김밥집과 구제 의류 라이브커머스를 동시에 운영한다.
낮엔 어머니가 주방을 쓰고, 저녁엔 딸이 카메라를 켜고 ‘쇼호스트’가 된다.
서로 바쁜 시간엔 손을 빌려주며 ‘시간 품앗이’로 인건비도 절약한다.

하나의 직업이 아닌, 다섯 개의 역할
희희 씨의 직업은 하루에도 몇 번씩 바뀐다.
재활 트레이너, 초등학교 놀이체육 강사, 단추 공예 작가, 구제 의류 판매자, 라이브 방송 진행자.
“제가 가진 능력의 조각들을 꿰매서 살아가는 중이에요. 그게 요즘 저 같은 청년들의 현실이에요.”
그녀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들에게 ‘한 직업’만으론 생계를 감당하기 어렵다는 걸 체감하고 있다.
정규직이라는 개념도, 안정된 커리어의 흐름도 과거만큼 유효하지 않다.

고정된 직업 대신, 유연한 생계 전략
고용률이 하락하고 실업률이 높아진 지금, 많은 청년들이 아르바이트와 프리랜서, 창작자와 유통 셀러 등 다양한 직업을 ‘조합’해 살아가는 구조로 전환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는 단순한 일자리 부족 문제를 넘어, 직업 구조의 질적 변화를 반영하는 현상”이라며, “청년들이 노동시장 바깥에서 생존을 설계하는 시대적 흐름”이라고 평가한다.

일자리,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야 하는 시대
희희 씨는 여전히 새 직업을 탐색 중이다.
“지금의 일들이 끝나면, 또 새로운 걸 해보려고요. 중요한 건 한 가지에 집착하지 않고,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힘을 키우는 것 같아요.”
청년 일자리 통계는 점점 악화되고 있지만, 그 안에서도 누군가는 ‘직업을 만드는 기술’로 새로운 생존 전략을 실행하고 있다.
그 전략은 완벽하지 않지만, 지금 가장 현실적인 대안일 수 있다.

기자의 한마디 | 정안뉴스 유현진 기자
“직업을 선택하는 시대는 지났다. 설계하고 조합해야 살아남는다.”
희희 씨의 사례는 ‘청년 고용률’이 아닌, ‘청년 생존률’이라는 말이 어울릴지도 모른다.
제도 바깥에서 자신의 일을 짓고 있는 수많은 N잡러 청년들.
이들의 삶은 불안하지만, 동시에 유연하고 단단하다.
그리고 이 유연성이야말로 지금 이 시대 청년 일자리의 본질을 말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