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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감새미에서 온 편지 – 제1탄] 버드나무에 깃든 전설, 박곡마을의 이무기 이야기



 

  대구에서 차로 얼마 가지 않아 도착할 수 있는 경남 합천군 쌍책면 상신리 박곡마을. 약 600년 전 형성된 이 마을은 지금은 완산 전씨 집성촌으로 알려져 있으나, 원래는 밀양 박씨들이 터를 잡고 살던 고장이었다. '박곡'이라는 이름도 밀양 박씨의 성씨 ‘박’과 깊은 골짜기를 의미하는 ‘곡’(谷)에서 비롯된 것으로 전해진다.

 

이 작은 마을에는 오래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신비로운 이야기가 하나 있다. 지금은 고인이 된 어느 마을 할머니로부터 들은 이야기다.

 

오래전 박곡은 강으로 둘러싸인 작은 섬이었다. 마을 한가운데 큰 굴이 있었고, 그곳엔 커다란 이무기 한 쌍이 살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해마다 제를 올리며 이무기에게 마을의 안녕을 기원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봄날, 마을을 거닐던 한 밀양 박씨가 어린 뱀을 돌로 쳐 죽였다. 그것이 이무기의 새끼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이미 늦은 후였다.

 

어미 이무기는 화병으로, 수컷 이무기는 고통 속에 숨을 거두었고, 이무기 한 쌍은 두 그루의 버드나무로 환생해 마을을 지켰다고 전해진다. 이 사건 이후로 박씨들은 마을을 떠났고, 한동안 마을은 텅 빈 채로 남겨졌다.

 

그러던 중, 고려 말 전쟁에서 큰 공을 세운 완산 전씨의 한 인물이 새로운 정착지를 찾아 남쪽으로 내려오던 중, 고령을 거쳐 이 깊은 골짜기 마을을 발견하게 된다. 인심 좋고 조용한 마을에 매료된 그는 이곳에 터를 잡았고, 이후 박곡은 완산 전씨의 집성촌으로 변모하게 된다. 흥미로운 점은 현재도 전씨 가문과 밀양 박씨 가문 간의 혼사가 잦다는 것. 양가 모두 이를 반기며, 두 집안은 오랜 시간 이어진 인연을 지금도 이어가고 있다.

 

마을에는 두 개의 저수지가 있었다. 위쪽 마을에 하나, 아래쪽 마을에 또 하나. 그중 아랫마을 저수지에는 작은 섬이 있었고, 이곳이 바로 이무기 부부의 무덤이었다고 전해진다. 어린 시절, 마르지 않는 샘이 있는 그 저수지에서 수영하던 마을 아이들은, 유독 그 샘 근처는 피하고 저 멀리 버드나무섬까지 수영 내기를 하곤 했다.

 

하지만 1980년대, 5공화국 시절의 농촌 정비사업으로 마을 풍경이 크게 달라졌다. 당산나무는 베어지고, 저수지는 축소되었으며, 이무기의 섬도 사라졌다. 그 후 이상한 일이 잇따랐다. 젊은이들의 돌연사, 뇌출혈로 인한 죽음, 공사에 참여한 사람들의 가족에게까지 닥친 연이은 초상. 마을 사람들은 그 당시를 떠올리며 '이무기의 저주' 혹은 ‘버드나무의 노여움’이라 수군거렸다.

 

이는 단순한 미신일까, 아니면 우리가 놓치고 있는 자연과의 균형에 대한 경고일까? 마을의 오랜 구전 속 이야기는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한 가지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자연과 조화롭게 공존하는 법을 잊은 건 아닐까?"

 

다음 편에는 지금은 사라진 상지못과 옛날 풍경을 담은 사진을 수소문해 공개할 예정이다.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그 자리를, 함께 기억해보자.

 

글 | 이정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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