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곳곳에서 교회 매물이 쏟아지고 있다. 서울 서초구와 마포구, 경기 고양시, 충남 천안시까지 ‘임대’ 또는 ‘매매’ 표시가 붙은 교회 건물이 중개사이트에 넘쳐난다. 일각에선 “이제 교회도 부동산 시장의 흐름을 피할 수 없다”는 냉소가 들린다.
본지는 나헤라공동체의 수(SU) 유스티노 수사를 만나, 교회 매물 증가 현상의 원인과 그에 따른 사회적·신앙적 함의를 들어보았다.

“교회, 공간 중심에서 사람 중심으로 전환해야”
수 수사는 “지금의 현상은 단순한 부동산 문제가 아니라, 한국 교회의 구조적 피로가 드러난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공동체성보다 프로그램과 운영 중심의 교회가 많아졌고, 목회가 직업화되면서 예배당이 생계 기반이 되다 보니, 결국 사람은 떠나고 건물만 남는다”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교회가 도시개발과 임대료 상승 같은 외부 변수에 지나치게 취약한 구조가 되어버렸다”며, “공동체가 실종된 교회는 지속되기 어렵다”고 말했다.
팬데믹 이후 예배당 의미 달라져… “공간 없는 교회로 간다”
코로나19 이후 온라인 예배가 정착되며, ‘교회는 반드시 건물이 있어야 한다’는 고정관념도 흔들리고 있다. 수 수사는 “예배는 반드시 지정된 장소에서 드려야 한다는 시대는 지났다”며, “공동체성과 돌봄이 살아 있는 신앙 공동체라면 공간은 더이상 필수 요건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나헤라공동체는 수도권 외곽 작은 주택 3곳에서 청년들과 함께 공동생활을 하며 신앙과 일상을 나누는 형태로 운영 중”이라며, “비용도 줄이고, 관계 중심의 신앙도 회복하는 방식”이라고 소개했다.

“이제는 교회를 팔 것이 아니라, 비우고 다시 써야 할 때”
수 수사는 “교회 매물이 쏟아지는 현실은 위기이지만, 동시에 가능성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그는 “그 공간을 다시 지역주민을 위한 카페나 치유센터, 쉼터로 바꾸면 예배당은 다시 살아난다”고 했다.
그는 또한 “교회 건물은 신의 집이 아니라, 사람이 모이는 터전”이라며 “지금은 건물을 팔아 떠날 때가 아니라, 건물의 의미를 비워내고 새로운 방식으로 채울 시점”이라고 했다.

“이제는 강단이 아닌 식탁으로, 프로그램이 아닌 손잡는 기도로”
수 수사는 “앞으로의 교회는 건물 중심이 아닌 사람 중심, 설교 중심이 아닌 동행 중심으로 바뀌어야 한다”며 “교회의 위기는 오히려 신앙의 본질을 되돌아볼 기회”라고 했다.
그는 “지금도 전국의 수많은 골목과 마을에서 조용히 기도하며 공동체를 지키는 사람들이 있다”며 “교회가 무너진 것이 아니라, 교회의 형식이 새롭게 태어나는 중”이라고 덧붙였다.
“예배당보다 신앙의 씨앗을 지켜야”
나헤라공동체는 ‘작지만 단단한 공동체’를 지향한다. 성직자가 아닌 수도자의 삶을 기반으로, 느린학습자 청년·경계선지능인을 위한 자립 공동체로 운영되고 있다. 수 수사는 “교회가 사라지는 시대일수록, 신앙의 씨앗을 지키는 이들이 교회의 미래를 여는 주체”라며 말을 맺었다.
기자의 한마디 | 유현진 기자
교회는 사라지는가? 아니다. 형태가 변하고 있을 뿐이다. 부동산 매물 속 교회 건물의 숫자를 세기보다는, 신앙의 본질을 되묻는 일이 먼저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