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계수록은 유형원이 살았던 시대의 상처와 질문에서 출발한다. 임진왜란에 이어 병자·정묘호란으로 이어진 국난은 조선 사회의 기틀을 뒤흔들었고, 그 여파는 단순한 전쟁 피해를 넘어 제도와 인식 전반에 대한 근본적 재검토를 요구했다. 반계수록이 ‘개혁’을 반복해 말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호란으로 인한 정변은 국가 운영의 허점을 드러냈고, 유형원은 이를 회피하지 않고 토지·조세·행정·교육의 구조적 개혁으로 정면 돌파하려 했다.
이 사유는 처음부터 널리 읽히기 위한 글이 아니었다. 반계수록은 필사본으로 전해지며 사상가들의 손에서 손으로 이동했고, 영조대에 이르러서야 경상감영에서 관찰사 주관으로 간행되었다. 그 과정에서 백불함 최흥원에게 필사본을 토대로 한 목판 제작이 의뢰된다. 이 결정은 개인의 사유를 공공의 기록으로 전환하는 역사적 선택이었다. 전란의 경험을 딛고 국가를 다시 세우려는 문제의식이 비로소 사회 전체의 질문으로 올라서는 순간이었다.
언론인의 자리에서 반계수록을 바라보면, 이 책은 시대를 향한 집요한 질문의 기록이다. 호란 이후의 혼란은 ‘왜 이렇게 되었는가’라는 물음으로 이어졌고, 유형원은 감정이 아닌 현실 진단과 제도 설계로 답했다. 언론이 해야 할 일 역시 다르지 않다. 위기의 원인을 구조로 파헤치고, 공허한 구호가 아닌 실행 가능한 대안을 공론의 장에 올리는 것. 반계수록의 간행은 그 자체로 공론의 확장이었다. 필사본에 머물렀다면 특정 집단의 담론에 그쳤을 사유가, 목판본이 되면서 사회 전체가 읽고 토론할 수 있는 텍스트로 바뀌었다.
각수의 입장에서 반계수록은 더욱 무거운 의미를 지닌다. 목판에 새기는 일은 단순한 복제가 아니다. 한 획 한 획은 지워지지 않으며, 오탈자 하나가 사상의 왜곡으로 남는다. 특히 호란이라는 국가적 위기 이후 개혁을 촉구하는 내용을 새긴다는 것은, 그 메시지를 시간 속에 고정하는 책임을 떠안는 일이다. 각수는 기술자가 아니라 최초의 독자였다. 나무판 위에 새겨진 글자는 종이보다 오래 남아, 다음 세대의 질문을 기다린다.
결국 반계수록은 말한다. 전쟁은 끝났지만, 개혁은 시작되어야 한다고. 그리고 그 시작은 기록에서 가능하다고. 언론인은 그 기록을 현재의 언어로 번역하고, 각수는 그 기록을 미래로 전달한다. 호란이라는 비극을 통과한 조선이 반계수록을 선택해 간행했듯, 오늘의 사회 역시 위기를 지나올 때마다 무엇을 기록하고 어떻게 남길 것인지를 묻는다.
정안뉴스 안정주 기자 |






















